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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해임: 혼란에 빠진 워싱턴 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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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해임: 혼란에 빠진 워싱턴 정계

10월 3일 미국 하원은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 하원의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입니다.

매카시의 하원의장 경력은 시작하기 전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2019년부터 공화당의 원내대표를 맡았던 매카시는 2022년 중간선거를 공화당의 큰 승리로 이끌어 하원의장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예상보다 저조했던 선거 결과는 공화당에서 그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은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획득했지만, 예상보다 적은 222개의 의석을 얻었습니다. 민주당이 213석의 의석을 가져가면서, 매카시는 하원의장이 되기 위해 20여 명의 공화당 강경파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맷 게이츠(Matt Gaetz)를 포함한 공화당 강경파들은 민주당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이유로 매카시가 하원의장이 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월 공식 하원의장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화당 강경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미국 하원의장이 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열리는 선거에 참석한 의원 중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동안 미국 하원의장 선거는 하원을 장악한 정당의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되는 의례적 선거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여 명의 공화당 강경파들은 계속해서 매카시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목하면서 선거를 지연시켰습니다. 민주당의 협조도, 공화당 강경파의 협조도 구하지 못했던 매카시는 4일에 걸쳐 진행된 14번의 투표에도 불구하고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케빈 매카시는 하원의장으로 당선되기 위해 여러 양보를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단 한 명”의 의원이 단독으로 의장 해임안 표결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원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양보를 통해 매카시는 하원의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위험도 커졌습니다. 하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민주당과 공화당 강경파가 동시에 매카시의 해임에 찬성한다면, 매카시는 언제든지 하원의장직을 잃을 수 있게 됐습니다.

연방 정부의 연간 수입&지출 출처: wikipedia

2023년 5월 미국이 부채한도 위기를 맞으며 매카시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본래 미국 법률에 따르면, 행정부가 특정 항목에 예산을 지출할 때 그 지출안은 입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미국의 입법부는 “부채한도”라는 제도를 통해 재무부가 발행할 수 있는 채권의 양에만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 정부 부채의 규모도 같이 커집니다. 이를 감안해 미국 의회는 정기적으로 부채한도를 올려 행정부의 부채가 부채한도를 넘치지 않도록 조절해 왔습니다. 미국 정부는 1960년 이래로 총 78회에 걸쳐 부채한도를 올려 왔습니다. 미국 역사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긴 하지만, 만일 입법부가 제때 부채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미국 재무부는 채무 불이행을 선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와 바이든 행정부의 과감한 재정정책을 거치며 미국의 부채 수준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2023년 1월 19일 미국의 부채 수준은 기존의 부채한도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6월 초까지 부채한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2024년도 미국 연방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메디케어와 같은 사회 보장 서비스를 축소하지 않으면 부채 한도를 올리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백악관은 부채 한도를 대가로 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반발했습니다. 민주당 강경파는 학자금 대출지불 유예와 같은 기존의 복지 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좁혀지지 않는 양측의 의견 차이로 인해 협상은 오랫동안 난항을 겪었습니다. 6월 초로 예정된 마감일이 다가오는데도 협상에 진전이 없자, 증권가에서는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5월 27일, 바이든과 매카시는 부채 한도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백악관이 몇몇 중요한 정책 예산을 삭감하고 내년도 예산 지출을 올해의 수준으로 동결하는 데 동의하면서 부채 한도의 적용은 2025년 1월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합의안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합의안은 하원에서 양당 온건파들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습니다. 이후 합의안이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과 백악관을 순차적으로 통과하며, 미국은 다시 한번 디폴트 위기를 피해 가게 됐습니다.

비록 이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미국의 피치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케빈 매카시는 하원의장으로서 미국의 디폴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9월 말 미국 셧다운 위기에서 매카시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회계 연도는 매년 10월 1일에 시작됩니다. 이때 미국 의회가 연방정부 예산안을 그 전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정부 셧다운이 발생하게 됩니다. 폐쇄가 발생하면 주요 정부 기관의 활동은 중단되거나 축소됩니다. 군인, 경찰과 같은 필수 직군을 제외한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무급 휴직 기간에 들어갑니다. 2013년에 발생한 셧다운에서는 80만 명의 공무원들이 무급 휴직에 들어갔는데, 이로 인해 미국 경제의 GDP 성장이 0.1~0.2% 둔화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5월 말 부채 한도 위기 과정에서 케빈 매카시는 2024년도 정부 예산 지출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백악관과 합의한 바 있었습니다. 강경 공화당원들은 이번에도 매카시의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번 예산안을 통해서 트럼프 정부의 국경·이민 정책을 부활시키고, 민주당의 정책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기를 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8월 1일 트럼프는 미국 제46대 대선 결과를 부정하게 뒤집으려 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강경 공화당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미국 법무부와 FBI에 대한 강력한 예산 삭감을 주장했습니다. 매카시는 정부 셧다운이 현실화되면 바이든 가족에 대한 특검을 진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강경 공화당원들은 셧다운이 이뤄져도 특검의 조사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반박했습니다.

9월이 되면서 정부 셧다운이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SNS Truth Social에 “원하는 걸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정부를 멈춰버려!”라는 메시지를 게시했습니다. 강경 공화당원들은 매카시가 민주당과의 협상으로 무리하게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매카시가 하원의장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각 당의 온건파들은 합의안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9월 29일 온건파 공화당원들이 주도한 정부 예산안이 강경 공화당원의 반대로 부결됐을 때, 셧다운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였습니다.

9월 30일, 정부 셧다운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 케빈 매카시는 11월 17일까지의 기간에 대한 임시 예산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요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빠져 있었지만, 정부 지출 규모에서는 민주당에 크게 양보한 내용이었습니다. 케빈 매카시는 자신이 “도박을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정치·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셧다운을 막기 위해서 이번 합의안이 필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케빈 매카시의 깜짝 예산안은 하원에서 민주당 의원 209명과 공화당 의원 126명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했습니다. 셧다운 위기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공화당의 분열상 역시 분명했습니다. 매카시의 예산안에 반대한 하원 공화당원들은 90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매카시를 하원의원직에서 끌어내기 충분한 규모였습니다.

10월 2일 공화당 하원의원 맷 게이츠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퇴임안을 제출했습니다. 하원의 강경 공화당원들이 매카시에 대해 적대적인 상황에서, 시선은 하원의 민주당원들에게 옮겨갔습니다. 10월 3일,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는 케빈 매카시가 하원 민주당들과 협상을 시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케빈 매카시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10월 3일 해임안 투표에서 케빈 매카시는 민주당 의원 208명과 공화당 의원 8명의 찬성으로 하원 의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케빈 매카시는 다시 하원의장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언론 폴리티코는 매카시 전 의장이 의원직에서 사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정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케빈 매카시의 합의안에 따라, 새로운 정부 예산안이 11월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또다시 셧다운의 위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원의장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협상의 가능성은 이전보다 더 불투명해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또한 불확실해졌습니다. 공화당 강경파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로운 지원 정책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케빈 매카시의 퇴임은 워싱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줬습니다. 미국 정계의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예산안이나 부채 한도와 같은 필수 정부 정책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앞으로 몇 달 동안 펼쳐질 워싱턴 정계의 이야기는 “드라마 The West Wing의 어떤 회차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흔들리는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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