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 홍수: 기후 재난 속 부재했던 정부
–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
올해, 2023년, 잘 살아남으셨나요?
분명 2023년의 기후는 전과는 달랐습니다. 저번 달까지 계속됐던 여름을 생각해 보세요. 바깥에 나오면 극한의 더위가 습한 날씨와 어우러져 찜통 같은 하루를 만들어 냈습니다. 야외활동은 고사하고, 실내에서도 에어컨 없이는 정상적으로 버틸 수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2023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재난이 계속되었던 해였습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며 대규모 산불이 잇따랐습니다. 하와이에서는 태풍에 의한 강풍이 거대한 화마를 일으키며 라하이나시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본토에선 태풍 힐러리가 북상함에 따라 캘리포니아 역사상 처음으로 ‘허리케인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한국에서는 7월 충청 지역에서 발생한 폭우로 인해 청주의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며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일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비극적인 소식이 전 세계에서 들려왔습니다. 이제 기후변화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리비아에서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중해에서 발생한 태풍 대니얼이 리비아의 데르나(درنة)시를 강타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1m에 달하는 거대한 강수량이 쏟아졌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평소 내리는 강수량의 2~3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댐 2개가 연달아 무너지며 거대한 홍수가 도시를 덮쳤습니다. 수만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도시는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Al Jazeera의 보도에 따르면, 처음에 태풍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만 해도 도시에는 일종의 “거짓된” 평온의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새벽 12시 반 경이었습니다. 어떠한 사전 경보도 없이, 도시의 건물들에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안전한 지붕으로 대피하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은 집 안에 갇힌 채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음식과 물도 없이 지붕 위에 계속 머물러야 했습니다. 전력이 끊기면서 외부 세계와의 연락도 차단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수색·구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수많은 도로와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많은 마을이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시신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제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 법의학관 빌랄 사블로는 도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시체들이 거리에 널려 있고, 해안으로 밀려오고 있으며, 무너진 건물과 잔해 속에 묻혀 있습니다. 단 2시간 만에 제 동료 중 한 명은 데르나 해변에서 200구가 넘는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리비아에서 발생한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이클론 대니얼은 리비아를 강타하기 일주일 전 이미 그리스 지역에서 폭우를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데르나 시의 시장인 Abdulmenam al-Ghaithi는 금요일 범아랍 방송사 al-Hadath에 출연해, 그가 재난이 일어나기 3일 전에 도시의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재난이 발생하기 직전이었던 일요일 밤에, 리비아 수자원부는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댐은 좋은 상황에 있고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알리며 시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댐이 어떻게 관리되었는지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무너진 데르나 시의 두 개의 댐은 유고슬라비아의 한 건설 회사가 각각 1973년과 1977년에 지은 것입니다. 2022년 리비아 Omar Al-Mukhtar 대학은 한 연구논문에서 강 유역을 반복적으로 강타한 홍수를 언급하며 데르나 지역의 댐에 주기적인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Ahmed Madroud 부시장은 데르나 시의 댐이 20년 동안 유지 관리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2011년까지 장기 독재를 유지하던 카다피가 권력에서 축출된 이후 리비아는 동부와 서부의 정부로 나누어졌습니다. 서부에는 UN이 승인한 Abdul Hamid Dbeibah 총리의 트리폴리 정부가, 동부에서는 군벌 지도자 Khalifa Haftar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벵가지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카다피의 몰락 이후 데르나 시는 2014년 이슬람 군부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고, 다시 2018년 Haftar 세력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외신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리비아의 정국 불안이 이번 홍수의 대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France 24는 “수년 동안의 폭력과 무관심이 도시를 전례 없는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이상기후가 심해진다면, 기존의 기후에 맞게 설계된 인프라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변화하는 기후에 맞게 인프라를 새롭게 정비해야 하지만, 리비아와 같이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있는 나라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나라에서 나라로 떠돌아다닐 것입니다. 같은 국가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각각 다른 수준으로 재난에 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격차는 새로운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기후변화는 계속 우리의 삶의 방식에 천천히 균열을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국의 정치·경제적 시스템은 심각한 도전을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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